
Hikari & mate
櫻井 百瀬
이 따스함이 영원하기를.


20××.××.×× 날씨 - 당혹
" ....? "
그 이질감은 내가 집을 나섰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모모 선배와의 약속을 위하여 번화가로 향하는 그 복잡한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 한 명, 차 한 대, 고양이 한 마리 없는 그저 고요한 정적.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거리에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고동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흥얼거림만이 남아있었다.
"이상하네..."
지진 탓에 건물이 무너졌거나 혹은 폭발사고가 일어나 거리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면 더욱더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이 상황을 이해할만한 현실적인 가설을 여러 가지 생각해보았지만, 그 무엇도 이 고요함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사고도 사건도 아니라면 그저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일단은 이 고요한 세상을 즐기며 약속장소로 걸어가는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걸까. 어딘가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 다급해 보이기도 하는 그 사람은 어느새 나를 발견했는지 무어라고 소리치며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달려오는 방향을 보면 분명 나를 향해 오는 느낌이었지만 그가 햇빛을 등지고 달려오는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 누구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었다. 공포영화의 도입부 같은 상황에 도망쳐야 할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익숙함에 나는 그저 그 사람이 나에게 달려오는 것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멀었던 거리가 점차 좁아지고 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모모 선배였다. 그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주위를 돌아다녔는지 얼굴에 약한 홍조 또한 드리워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 걸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려고 그에게 한 발짝 다가서자 흠칫 놀라며 오히려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었다. 대체 뭐 하자는 건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의 손을 잡았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잡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거의 손을 얹히는 수준으로 약하게 나의 손을 감쌌다. 그 후에 점점 손을 잡은 힘이 거세지더니 결국은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그렇지만 손을 뿌리칠 수 없을 만한 힘으로 손을 잡았다.
선배의 손은 떨고 있었다. 밖을 오래 돌아다닌 탓인지 온기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손등은 차디찬 공기와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던 탓에 불그스름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딘가에 긁힌 것인지 자잘한 생채기도 조금 나 있었다. 손으로 전달되는 힘은 강했지만, 눈으로 느껴지는 힘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선배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 아, 다행이다..... "
평소의 여유롭던 모습이 어디에도 없다. 내 손을 잡으며 떠는 선배의 모습은 지금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를 향하는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안도감이 담겨있었고 손에서 느껴지는 차디찬 온기는 절박함이 놓여있었다.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한 나를 바라보며 다행이라고 말하는 선배의 표정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아무리 거리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길 한복판에 멀뚱히 서 있는 것은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에 일단은 가까운 카페로 들어왔다. 물론 이곳 역시 점원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적막한 카페에 위화감을 느끼긴 했지만, 모모 선배의 상태 이외에 그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쓸 여유는 지금의 내겐 없었다. 우리는 카페의 비어있는 테이블 중 아무 곳에나 앉아 그가 말을 꺼내는 것을 기다렸다.
" 사람들이, 사라졌어. "
알고 있어요.
" 사람들이, 정말 한순간에. 내 눈앞에서 마치 마법처럼. 아니 세상의 종말처럼. 그렇게, 그렇게 사라졌어. "
그렇군요.
" 정말 한순간이어서. 그래서. 나는 히카리 네가. 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라진 줄 알았어 그래서... "
그래서 날 찾았어요?
" 네가 사라진 줄 알았어... "
걱정 말아요. 나는 여기 이렇게 있어요.
조심스럽게 선배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온기가 느껴졌다. 메말라 있던 눈동자가 촉촉해지는 것이 보였다. 선배의 뺨에 투명한 따스함이 흘렀다. 그는 조용히 따스함을 흘리며 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나의 손에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선배도 나와 같은 온기를 느끼고 있는 거겠지. 혼란스러운 이 상황이 온기에 인하여 모두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만약 세상에 둘만 남겨진다고 해도 분명 행복할 거야.
20××.××.×× 날씨 - 두려움
선배에게 나는 이 세계에 대하여 잠시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제안을 했다. 세상을 홀로 느끼고 마음을 추스를 생각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선배는 처음에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지만 결국은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더 떨어지지 말아야 할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에게는 아직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숙사의 방에 홀로 누워 생각하는 중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그것도 한순간에. 사실 엄연히 따지면 모든 사람은 아니다. 나와 모모 선배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단둘이 남겨졌다. 학교도 아니고 기숙사도 아닌 세상에 단 둘. 픽션이었다면 꽤 달콤하고 두근거리는 울림이었겠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자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사람이 없다면 나의 꿈은 어떡하지. 나의 미래는. 관객이 없다면 성우는 더는 성우가 아닌데. 우리의 미래는 이곳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에 단둘밖에 없는 고요한 세상에서. 물거품같이 사라지는 걸까. 그건 너무 슬프잖아. 선배의 앞에서 억지로 참아왔던 쓰라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에 단 둘뿐이라는 로맨틱한 공간에 던져진 나는 어리석게도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20××.××.×× 날씨 - 따스함
선배를 다시 만났다. 하루의 시간 이후 많은 것을 생각했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꿈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세상이 무심하게 삼켜버린 많은 사람들은 해가 떠도 해가 져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서로를. 홀로 있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는데 둘이 되니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만날 때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나의 이야기를 물어보며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이야기 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말을 하지 않고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저 멍하니. 서로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 사랑해요. "
자연스럽게 이 말이 나왔다. 무척이나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홀로 세상에 남았다면 나는 분명 미쳤을 거라고. 함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 그게 당신이어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의 미래는 물거품처럼 사라졌지만 거품으로서의 새로운 미래가 생겨났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다시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야가 흐려졌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지금 내 눈가를 흐리게 만드는 것은 쓰라림이 아닌 따스함이니까.
이 따스함이 영원하기를.
20××.××.×× 날씨 - 아름다움
공연을 준비하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의 관객이 되고 서로가 서로만의 성우가 되기로. 스토리도 무엇도 준비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하는 공연이었기에 준비할 것이 그리 많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했던 어떠한 일보다도 긴장이 됐다. 학교의 강당에 마이크를 준비하고 그 앞에 셨다. 옆에는 나만의 성우이자 관객이 있었고, 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빛나는 세상을 봐. 이 모든 세상이 다 우리의 것이야. 아름답지 않아?」"
모모 선배가 먼저 대사를 읊었다.
"「아름다워. 하지만 이 세상이 품고 있는 것이 고작 이 작은 두 사람이라는 것이 쓸쓸해 보여.」"
그다음을 내가 이었다.
"「그런 것에 쓸쓸함을 느끼지 마.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이런 풍경을 만들어낸 것은 세상 그 자체니까.」"
"「풍경이 아름다워. 세상이 아름다워. 그 속에 있는 우리도 아름다울까?」"
"「아름다워. 아름다운 세상 속에 있어서가 아니라 네 그 자체로.」"
어쩐지 대사가 아닌 나를 향해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림으로. 글로. 조각으로. 남길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남겨두고 세상에 알리고 싶어. 」"
" 세상에는 이렇게도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고. "
나를 바라보며 그리 말하는 모모 선배의 얼굴엔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20××.××.×× 날씨 - 안심
날씨가 좋아 가까운 공원에 놀러 가기로 했다. 간단한 도시락과 간식들을 챙겼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고 해도 밤에는 추워지므로 겉옷도 잊지 않고 챙겼다. 가볍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이 세상을 만난 그날과 같은 고요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다. 기숙사 앞으로 나가니 선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의 모습 그대로.
공원은 사람이 없어 넓고 쾌적했다. 잔디에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고 꽃들은 바람 소리에 맞춰 싱그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웠다.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은 포근해 보였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모모 선배가 부르는 것이었다. 잔디는 포근했고 새소리와 노랫소리가 어우러져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으니 마치 하늘 위를 떠도는 기분이었다.
" 선배는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나요? "
언젠가 꼭 한번 물어보고 싶던 질문이 나도 모르게 내 입을 통해서 튀어나왔다. 평화롭고 따스한 이 생활이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친구들과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릴 때가 있다. 세상에 단 둘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나의 세상의 전부라는 로맨틱한 언어로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나의 세상에는 그 사람에 한정되어 앞을 볼 수 없다는 말도 된다.
그는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 히카리. 요즘의 나는 너의 노크 소리에 아침을 맞이하고 네 상냥한 작별 인사로 어둠을 이겨내. 항상 네게서 봄의 따스함을. 여름의 푸름을. 가을의 포근함을. 겨울의 아름다움을 느껴. 나의 모든 세상은 네 안에 담겨있으니까 나는 더 이상의 세상은 바라지 않아. 나의 세상은 네가 아니지만 아니라 너라는 사람 안에는 나의 모든 세상이 담겨있어. "
아.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과 함께여서 다행이야.
20××.××.×× 날씨 - 후회
세상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끝나지 않는 밤은 없다고 하지만, 지지 않는 해도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둘만의 유리정원에 뽀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둘만 남겨두고 세계를 유지하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넓었고 또 힘이 들었다. 우리들의 비밀정원은 빠른 속도로 무너졌고, 어둠으로 가득 찬 세계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할걸.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20××.××.×× 날씨 - ○○○
" 히카리. 나를 사랑해? "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슬픈 물음이 들려온다. 조금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차가운 무언가가 얼굴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선배의 괴로움인 것 같았다. 대답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보았다. 역시나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선배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나의 빛이 보이지 않아.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밝게 빛나서 어디에 있든 바로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선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언제나의 온기가 그곳에 있었다. 시야는 흐렸고, 어둠 탓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배의 표정을 보았다.
그 표정은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절망을 담고 있는 듯해 보이지만 희망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좌절하고 슬퍼함과 동시에 안심하며 눈물 흘리는 듯했다. 모호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목을 원망하며 억지로 입을 움직여 보았다.
'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
또다시 차가운 무언가가 나에게 떨어졌다. 내 말이 전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대답 좀 해주지. 그렇게 생각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손등 위에. 팔 위에. 얼굴 위에. 선배의 절망이 그렇게 하나씩 나에게 떨어졌다. 처음에는 아팠다. 두 번째에는 괴로웠으며 세 번째에 이르러서는 슬픔이 나를 감쌌다.
'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무엇보다 이 말을 전해야 했다.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우리가 이 비밀정원에서 나가기 전에. 당신의 안에 나의 세상이 있고 내 안에 당신의 세상이 있을 때 전해야 했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한다고. 내가 이렇게나 사랑한다고. 인간으로서도 친구로서도 아닌 연인으로서. 다른 누구도 아닌 사쿠라이 모모세 바로 당신을.
어둠이 우리 둘을 잠식하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손에 느껴지는 온기 덕에 그리 두렵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나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둘의 유리정원의 모습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끝도 시작도 오직 서로밖에 없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