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kari & mate
光城 新多
"저기 아라타. 아라타는 어떤 사랑이 하고 싶나요?"
어릴 때부터 줄곧 생각해왔다. 나에게도 사랑이 올 지. 온다면 어떤 사랑일지. 영화 같은 사랑일까. 드라마 같은 사랑일까. 아니면 순정만화 같을까. 만약에 온다면 그게 언제쯤일까. 줄곧 그런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
“아라타는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나요?”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라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호세키가오카의 단 한 명 뿐인 여학생이자 특대생인 아마네 히카리였다. 그 목소리에 점심시간 학교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코죠 아라타의 시간은 잠시 보류되었다.
“아 특대생이었구나! 미안해, 그만 멍때렸지 뭐야. 근데 갑자기 왜 그래?”
“아 이번에 애니메이션에서 짝사랑하는 여자아이 역할을 맡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역할 연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를 짝사랑해본 경험이 없어서 이 역할이 잘 와닿지 않아서요..”
“그렇구나. 그래서 나한테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냐고 물어본 거구나.”
“네 맞아요! 혹시 있다면 그때의 일을 듣고 싶어서요!“
눈을 반짝 빛내고 호기심을 내뿜으며 다가오는 히카리의 모습이 귀여워 아라타는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히카리의 기대를 부응해줄 아라타는 안타깝게도 기억속에서 누군가를 이성으로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친화력과 활발함으로 인기가 많아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냈다. 친구들 중에서도 이성으로 느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없어.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군요…. …모처럼 있었으면 연애얘기도 듣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어요,,,”
“잠깐 특대생!!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솔직한건 좋은 거랬어요.”
“그건 그렇지!! 아!!”
갑자기 퍼뜩 떠오른 생각에 햇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아라타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그 소리에 히카리는 궁금증 가득한 눈동자를 하고 아라타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아라타??”
“정 그러면 신에게 순정만화나라도 빌려보는 것은 어떨까?! 순정만화를 참고하면 조금이나마 캐릭터의 마음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좋은 생각이에요!!! 같이 빌리러 가죠 아라타!!!”
“잠깐만 기다려 특대생!!”
아라타의 제안에 한껏 텐션이 오른 히카리는 저도 모르게 아라타의 팔을 잡아끌고 서둘러서 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결국 신에게서 순정만화를 빌려온 아라타와 히카리는 C동 301호실에서 열심히 순정만화를 정독하고 있다. 사정을 알게 된 신은 빌려주면서 ‘요 만화의 00편은 진짜 대박이야! 요 만화는 애니화로도 됐으니까 애니 블루레이도 빌려줄 테니 꼭 보라고~~!!!!’ 라며 애니 블루레이판도 곁들여 주었다. 그 열정적인 모습에 순간 움찔한 히카리와 아라타는 얼떨결에 받아들 수 밖에 없다.
사실 히카리는 혼자서 방을 쓰고 있었기에 그 곳으로 가도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히카리의 방에는 티비나 비디오세트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안 아라타가 ‘나와 유우나군 방에는 티비랑 비디오세트가 있으니까 우리 방으로 오면 되겠다!! 마침 유우나군도 일이 들어와서 늦게 온댔고!’ 라고 자기도 모르게 히카리를 301호실로 데려오게 했다.
순정만화는 신이 말한 대로 정말 설레는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좋아해’ 라며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장면은 자기도 모르게 두근두근 설렜다. 어라 근데 뭔가 방 안의 온도 좀 더운거 같지 않아? 나만 그런가...?
히카리에게 덥지 않냐고 물어보려고 등을 돌린 찰나에 바로 옆에 있던 순정만화들이 와르르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진 만화책들을 줍기 위해 자세를 바꾸고 허리를 숙여 팔을 뻗은 순간, 손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 감촉에 고개를 들면
“죄송해요!! 만화책 떨어져 있어서 주우려고 하는게 그만!! “
“아,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그러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돼!”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두 볼을 붉히며 당황한 듯이 말을 더듬었다. 마치 누가 보면 연애를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 같이. 아마 여기에 이노리가 있었으면 당장이라도 아라타를 물고 신이나 유우나 등이 옆에서 말리지 않았을까.
“자 여기요, 책 여기에서 있어요. 아라타!!”
“으,응. 고마워!”
히카리는 성급히 아라타에게 책을 건네고는 다시 자리를 잡고는 뜨거워진 두 볼에 손부채질을 해댔다. 그것은 아라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지 이 분위기는? 그냥 손이 살짝 닿았을 뿐인데 뭐랄까…. 부끄럽고 두근거리는 듯한…. 아~~~ 간질간질 거려서 참을 수 없어!! 일단 화제 전환을!!
“저기 특대생, 책 어땠어?? 도움이 됐어??”
“어…조금은요..? 확실히 만화책을 읽는 거랑 대본으로 대사 연습하는 거랑 느낌이 다르네요.”
“그치그치! 그러면 애니로도 계속 보자!”
“좋아요.”
아까의 그 분위기에 이어서 그 두 사람은 애니를 재생시켰다. 애니를 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집중하는 듯 했다. 애니에서 고백하는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제 이야기인 양 두 사람은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어릴 때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느꼈었던 생각이 재차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소리가 넘쳐 흐르던 이 방의 침묵을 깬 건 히카리였다.
“저기 아라타. 아라타는 어떤 사랑이 하고 싶나요?”
“나? …나는 누군가를 한번도 이성적으로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사랑을 왠지 모르게 동경했었어. 해본 적이 없으니까 보면서 ‘정말 사랑은 이런 걸까. 나에게는 어떤 사랑이 올까.’ 라고 생각했어. 실제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 같지가 않다는 걸 잘 알지만. “
“아라타는 저하고 비슷하네요. 어릴 때는 누구나 만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을 동경하지요. 커가면서 누군가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그럴 생각할 틈이 없었고 현실은 그렇게 드라마틱 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의 꿈을 쫓는 것을 택했어요. 열심히 해서 어떻게 해서든 성우가 되고 싶었고, 결국 전의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호세키가오카에 왔어요. 와서도 저는 열심히 해서 모두를 따라잡아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사랑을 딱히 의식해 본 적도 없었어요. 아마 그래서 이번에 맡은 역할이 잘 와닿지 않았던 거 같아요.”
아라타는 진지한 히카리의 모습에 할말을 잃고 바라봤다. 정말 특대생은 성실하구나.
“…그래도 순정만화가 도움이 되서 다행이다. “
“그럴지도요. 앗…!!!”
히카리가 작게 탄성을 내지르자 아라타는 궁금해하며 히카리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시선 끝에는 ….화면에서 두 주인공의 키스신이 나오고 있었다. 아라타는 아까의 그 간질거리는 기분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에 빠졌다.
“어…어쩌지… 만화책에서 나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화면으로 보니 이쪽까지 부끄러워져버렀어.”
“…..사실 저도 그래요…... 막 이쪽까지 두근두근 거리고 같이 있는 사람 신경쓰이고 막…”
히카리가 말을 하려던 그 때 덜커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어. 어 특대생짱. 있었구나. “
문 소리의 주인은 아라타와 같은 방인 모리시게 유우나였다.
“아 네, 방에서 역할 연구를 위해 같이 순정 애니를 보고 있었어요.”
“유우나군! 수록 늦게 끝난다고 하지 않았어?”
“응. 사실 오늘 수록이 예정보다 빨리 끝나서.”
“그럼 전 방으로 이만 갈게요. 아라타, 오늘 고마웠어요. 안녕히계세요, 유우나 선배!!”
히카리는 유우나와 아라타의 배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부디 아까의 일이 들키지 않았기를 바라며.
*
“앗 특대생,.,,, 가버렸네…”
“특대생짱 왜 저렇게 허둥지둥 대지…? 내가 불편한… 건 아닌 거 같고. 혹시 아라타 특대생과 뭔 일이 있었어?”
“으응, 딱히 뭔 일이 없었어. 할일이 급한 거 아닐까..?”
“….뭐 그런가. 그러면 그런거겠지.”
아라타 또한 아까의 일이 들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물론 유우나가 아라타를 모른척 넘어가주는 것을 모른 채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