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kari & mate
輝崎 千紘
"그럼... 내일 또 보자, 아마네."
여름이네. 응, 벌써 이렇게 됐네요…. 더워. 히카리는 작게 중얼거리며 숱 많은 갈색 단발머리를 묶어 올렸다. 살짝 드러난 목덜미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손에 땀이 차고, 얼굴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더위. 6월에도 이 정도라면, 8월에는 어떠려나…. 윽, 방금 상상했어요. 이렇게 더워질 줄 알았으면 하복을 입고 올 걸 그랬어. 아하하, 그건 저도…. 더 대답할 여력이 없어 조용히 손부채만 부친다. 다시 카페로 돌아가고 싶어요, 같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다, 히카리가 먼저 벤치에 주저앉는다. 더 걸을 힘이 없었던 탓이다. 조금만 쉬었다 가요, 키사키 군. …아, 그래.
매앰, 매앰 하고 우는 매미가 시끄러웠다. 히카리는 재킷을 벗어 허리에 묶었다. 가만히 순풍으로 부는 바람을 맞다, 눈에 띈 곳은 한 노상 판매점. 어린아이가 좋아할 법한 색색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 …잠깐 더위를 달랠 정도는 될 것 같죠. 히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히로에게 말했다. 저기, 키사키 군? 그렇지만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이름을 불러도, 결국 조심스레 손을 쥐고 잡아당겨도, 치히로는 그 자리에서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천연 톱의 시선은 아까 자신이 봤던 가게에 똑같이 머물러 있어서, 히카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키사키 군, 잠깐 기다리고 있을래요? …응? 아이스크림 사올게요. 치히로 군도, 방금 먹고 싶다고 생각했죠? 빙긋 웃으며 그늘에 자리를 내주는 모습이 참 다정하다. 어떻게… 알았어? 그걸 모르는 게 더 이상해요…. 히카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기다려요. 치히로는 히카리가 가게를 향해 총총 달려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아까부터 계속 덥고 답답해.
날씨 탓이겠지, 이거.
두근두근. 빨리 달려서 그런가, 유난히 심장 박동이 거세다. 볼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았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히카리의 갈색 머리카락이 평소와 다르게 하나로 묶여 있었다. 귀엽다, 는 생각이 든 건 아주 찰나. 제 쪽을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히카리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예쁜 색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엷은 미소가 스며든 순간. 치히로의 얼굴이 확 붉어지고 열이 올랐다. 사랑은 열병이라고 했던가. 잠복기엔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다. 눈치챘을 땐 이미 중증. 심장에서부터 열이 피고 평범했던 시선은 특별해진다. 이건, 약을 써도 낫지 않는 심각한 불치병. 고대 대마녀의 저주보다 독한, 먼 옛날부터 내려왔던 비밀의 주문. 에로스의 금화살은 사정없이 우심방을 꿰고 투명한 피를 흘리게 한다. 사랑이란 건, 그런 거.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 것. 뭐야, 진짜.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어 시선을 피했다. 이런 거, 그러니까……. 처음 느끼는 두근거림. 낯선 감정에 처음 지어보는 표정. 치히로는 지금 자신의 표정을 짐작할 수 없었다.
히카리가 가게에서 돌아왔다. 치히로의 앞에 내민 건, 토핑을 잔뜩 추가한 초콜릿 아이스크림. 멍하니 받아들고 습관처럼 크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단맛이 퍼지면, 조금 안정되는 것 같기도…. 무슨 생각 해요, 키사키 군. 으앗. 갑자기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답지 않게 너무 놀라버렸다. 하마터면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마네는 평소와 다른 반응에 눈을 깜빡이다 소리 내 맑게 웃었다.
왜 웃는 거야?
아하하, 아무것도…….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열심히 웃고 있잖아.
앗, 티 났나요?
엷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반짝반짝. 아마네는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러다가, 치히로를 한 번 보기도 하고. 시선이 마주치면 눈을 깜빡이고, 또다시 함께 웃고. 영문 모를 상황들만 이어졌다. 하지만, 이 상황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날 놀리는 거야? 장난기 섞인 말을 건네고 나서야 히카리의 웃음이 멈췄다. 히카리는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는 듯, 곰곰이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뭐랄까,
키사키 군도, 역시 귀엽구나~… 싶었어요.
아, 그리고 이번엔 제가 샀으니까, 다음번엔 부탁해도 되죠?
되나요? 아마네는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치히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번에. 미래와 여지를 약속하는 말. 평소와 같은 대화일 뿐인데 오늘은 특히 더 설레는 느낌. 입을 조금 열기만 해도 감정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결국, 심호흡을 몇 번이고 한 뒤에야 천천히 속삭일 수 있었다. 흘러나온 말은, 초콜릿 시럽을 잔뜩 뿌린 아이스크림보다, 몇 배는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말.
좋아.
그럼… 내일 또 보자, 아마네.
서로의 손이 살짝씩 닿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나이였다. 하늘이 파란 초여름이었다. 좋구나, 청춘이란 거~. 질투 섞인 이야기가 들려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서로만 보이고. 첫사랑의 수줍음도 솔직한 표현도 마냥 서툴기만 하지만, 아무튼 네가 곁에 있으니까 좋지 않으려나.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예쁜 울림이 사랑에 물을 줬다. 애정은 수분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무작정 커지고 있었다.
사랑이 피어나기 가장 좋은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