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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이야기
연인과 죽음 카드
미츠
이상한 곳이었다. 소리가 없어 그저 고요한 풍경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 자신이 내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며 아, 꿈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무수한 별들이 하늘에 수놓아져 있었지만, 너무 멀어 빛은 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얇은 천만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춥지 않은 이 상황을 신기해하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무작정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저 그렇게 계속 걸었다. 변하지 않는 하늘과 별들을 무시한 채 그저 발밑의 파동으로 방향을 가늠하며 그저 그렇게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을 걸었는데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꾸준하게 해왔던 레슨 덕분일까, 아니면 꿈이라서일까. 이대로 걷는다고 무언가 나오기는 할까. 차라리 그냥 가만히 이 꿈에서 깨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그런 잡다한 생각들도 걷는 도중 조금씩 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걷는다면 무언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처음 발걸음을 옮겼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풍경. 어두워진 하늘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앞. 이대로 영원히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풍경에 먹혀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아무래도 좋으니 무언가 변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만 남은 채로 일렁이는 감각을 느낄 때였다.
지평선 너머로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서 있는 곳은 땅이 아닌 물이었으니 수평선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밝음은 순식간에 떠오르며 세상에 색상을 칠했다. 소리를 입혔다. 내가 아는 세상을 변화시켰다. 어느새 멈춰버린 발걸음도, 밝아오는 세상도 모두 어색하고 생소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상했다. 새로운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밝음은 따스하고 온화했으며 그와 동시에 저주와도 같이 느껴졌다. 그 밝음을 보니 알았다. 이곳은 꿈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의 삶의 모습이자, 내 삶이었다.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변화는 원치 않았다. 차라리 꿈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좋았다. 어두웠을 때가 좋았다. 하늘의 별빛이 부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빛을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빛은 무섭다. 이 밝음에 익숙해져 버리면 다시금 어둠이 찾아올 때 빛을 그리워하게 되니까. 꿈과 같았던 어둠이, 현실이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빛은. 밝음은 싫다.
푸른빛 하늘, 분홍빛 구름, 발아래의 수면. 액자 속의 명화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눈이 멀 것 같았다. 한번 멈춰버린 걸음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듯 발을 내디딜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다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두 눈을 가리고 어둠을 찾았다. 자신의 그림자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어둠에서 안정을 찾았다. 편안했다. 그럼에도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빛이 밝았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저주와도 같은 따스함이 그렇게 속삭였다. 괜찮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얇고 넓어야만 안심이 됐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손에 잡힐 것 같아 보여도 절대로 잡히지 않는 밝은 빛처럼. 그런 관계가 편했다. 이 따스함처럼 이 온화함처럼. 이 빛처럼, 깊은 관계는 싫었다. 사라질 때 빈자리를 느끼는 건 밝음도 사람도 마찬가지니까. 사람도 밝음도 모두. 나에겐 저주와 같다.
일렁이는 수면에 손을 담가 보았다. 평범한 물이었다. 조금 차가웠지만 빛의 따스함과 어우러져 괜찮은 온도였다. 천천히 몸을 담가보았다. 시원하고 포근했다. 눈을 감고 그렇게 온몸을 맡기자 전엔 없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귀에 느껴지는 먹먹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내리쬐는 밝음도 더 이상은 무섭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빼니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눈은 뜨지 않았다. 눈을 뜬다면 이 편안함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영원히. 영원히.
"......라는 내용인데~ 특대생쨩 어떻게 생각해?"
오랜만의 연휴에 조금 쉬려고 방문한 서점에서 사쿠라이 선배를 만나 인사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모처럼 만났으니 이야기라도 하자며 근처 카페에 반강제적으로 끌고 와서는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 이거다. 어젯밤에 사쿠라이 선배가 꾸었다던 꿈 이야기.
"글쎄요... 몽환적인 이야기네요."
"에~? 그게 끝이야? 무언가 상징하는 것이 있는 꿈 같아서 물어보려고 온 건데!"
"사쿠라이 선배도 모르시는데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차라리 이노리에게 물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이노리라면 그런 거 잘 알 것 같으니까요."
그래 분명 이노리라면 상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이노리도 모른다면 사쿠라이 선배의 넓은 인맥으로 아는 누군가를 찾아내면 될 일을 왜 해몽의 히읗 자도 모르는 나에게 물어보는 걸까.
"그렇지만 특대생쨩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는걸. 혹시 내가 방해했을까? 미안"
"아뇨 그건 아니지만요..."
방해는 아니었다. 그저 저렇게까지 내 의견을 원하는데도 마땅한 답을 내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모르겠는걸.
"사쿠라이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데요?"
"나? 나는 열심히 생각해봤는데 전혀~ ... 아 이런, 이야기에 너무 몰두했나 봐 벌써 해가 지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어 특대생쨩~ 기숙사로 가지? 바래다줄게."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선배의 말을 듣고 창밖을 보니 정말로 세상이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다. 바래다주겠다는 사쿠라이 선배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미안해서 그냥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숙사 입구에서 짧게 작별인사를 한 후에 천천히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서 책도 읽고 청소도 했다. 꽤 빨리 일을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창밖의 하늘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나니 다시금 선배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냥 무시해도 될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꿈 이야기를 할 때의 사쿠라이 선배의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해 보여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할 일은 다 했으니 아직 찾아볼 시간은 남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조사하고 친구들에게 연락도 해봤다. 완벽한 해답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는 찾지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정보들을 조합하면 그럴싸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라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잠시 보였던 그 얼굴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아서. 정말로 잊혀지지 않아서.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전화를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것 같아 일단은 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로 했다.
[Iine]사쿠라이 선배. 저 조금은 해석 가능할지도 몰라요. 초보자의 단순 해석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자고 있는 걸까. 답장이 없었다. 체감상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일단 창밖에 어둠이 깔릴 정도의 시간이었다. 선배의 답장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미리 보내두고 그 후에 다 읽은 감상까지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조금 긴 작성이 될 것 같았지만 일단은 최대한 적어보기로 했다.
[Iine] 그럼 일단, 그 장소부터 설명할게요. 사쿠라이 선배가 말씀하신 대로 그 장소는 누군가의 삶. 그러니까 내면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사쿠라이 선배의 내면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죠. 꿈이라는 건 무의식을 반영할 때가 많으니까요. 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내면이 바라는 밝음. 또는 선배 가까이에 있지만 선배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밝음일 거에요. 또한 저는 그 밝음을 사람과의 관계라고 해석했어요. 선배가 말씀해주신 꿈 이야기에서도 있었으니까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건 아마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두려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계속 빛과 비교하며 어둠을 찾는 것을 보면 아마 사람들과 깊은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나타내는 거겠죠. 그 어둠이 빛을 만나 사라졌다는 것은 선배의 일생에서 어둠을 이길 정도로 놓치고 싶지 않은 인연을 만날 예정이거나 혹은 이미 만났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밝음이 나타나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요- 에 꿈속의 선배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껴요. 그리고 그것을 저주라고 칭하며 어둠을 찾죠. 선배는 살짝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어지기도 전에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구석이 조금 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깊게 들어오는 그 밝음을 밀어내고 안식을 찾죠. 하지만 밝음은 그런 외로움마저 위로해줘요. 그 후 선배는 처음으로 발밑의 물을 건드리죠. 물은 선배에게 큰 반환점이 되는 계기에요. 어둠이 선배의 눈 앞을 가리고 있었을 때도 가장 가까이에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했죠. 그리고 밝음을 만나 발견했어요.
그 후 결국 선배는 자신이 서 있던 물 안으로 들어가고 눈을 감으며 편안함을 느끼죠. 뉘앙스로도 느껴지지 않나요? 아마 여기서 꿈속의 선배는 한번 죽음을 맛보았을 거에요. 보통 죽음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여러 차례 편안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을 봐서 저는 이 죽음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했어요. 죽음은 끝이기도 하지만 다시 태어나는 시작점이기도 하죠. 선배가 실제로 그 밝음에 해당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처음에는 피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겠지만 물을 만나 두려움을 이기고 새롭게 변할 거라는 암시라고 저는 해석했어요.
[Iine]... 이게 끝이에요. 제가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어요. 의미가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지만 해석을 못 한 부분도 있었고, 미흡한 부분도 여러 부분 있긴 했지만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네요. 그리고 해몽이라는 것이 누가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너무 제 해석만 받아들이지 마시고 참고만 해주세요.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세요.
모두 적어보고 나니 왜 이걸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낸 해석을 보면 끼워 맞추기 해석도 많았고. 그렇지만 후회는 없었다. 창피하긴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기도 했다. 이상한 해석도 많았지만 왠지 모르게 사쿠라이 선배에 대해 아는 점이 많아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내려두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으니 수마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하루의 끝이 다가오니 조금 아쉽기는 해도 기분은 좋았다. 오늘 밤 꿈에서는 어쩐지 파란 하늘에 분홍빛 구름이 몽실몽실 떠오르는 물가의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